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단 편집) ==== 증거의 부정확성 ==== 실제 학살이 발생했더라도 한국군이 했다는 명확한 증거 역시 부족하다. 베트남의 전장은 남, 북베트남군, 소수 민족 민병대들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얽히고설킨 전장이었으며 서로의 군복으로 위장하는 일이 잦았다. 퐁니-퐁넛 학살관련 미군 조사 문서를 보면 베트남군 민병대와 남베트남군 증언으로 베트콩들이 한국군 얼룩무늬 군복이나 월남군의 군복을 입고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해병대가 위장복에 사용한 덕헌터 패턴은 폭넓은 인기를 얻으며 유행해서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군대들이 이 덕헌터 패턴에 기반한 위장복들을 제작해 입었었고, 한국의 파월 청룡부대가 착용한 점박이 무늬 전투복 역시 그에 해당했다.[* 그런데 정작 미군은 고위층들이 위장복의 효과를 잘 못 느껴서 미해병대도 제식이 녹색 민무늬 전투복으로 회귀하는 등 덕헌터를 잘 안 입었고 일부 부대원들이 사제 위장복을 사입는 정도였다.] 베트남 전쟁 때에도 미군, 한국군, 남베트남군, 현지민병대, 심지어 북베트남군도 덕헌터 스타일의 위장복을 애용했으며, 현대 베트남군 특수부대도 이 위장복 디자인을 여전히 사용중이다.[[https://strikehold.wordpress.com/2011/02/20/reversible-camouflage-uniforms/|미제 덕헌터 전투복]][* 한국군이 이걸 카피한 것이다.] [[https://defenceforumindia.com/forum/proxy.php?image=http%3A%2F%2Fi353.photobucket.com%2Falbums%2Fr369%2Fcoccafedang%2FQuan%2520doi%2520nhan%2520dan%2520VN%2Fkhcndaccong5.jpg&hash=ed90ca605a50c9b1f359a16d1b0b585d|현재 베트남군용 덕헌터 전투복]][* 북한군도 특수부대에서 비슷한 위장무늬를 쓰다가 2010년대 중반즈음에 얼룩무늬 전투복이 지급되었다.] 특히 전쟁기의 베트남에선 사제 전투복 시장이 컸기 때문에 특수부대들이 자기네 제식이 아니더라도 맘에 드는 전투복을 시장에서 사다가 착용하고 다녔다. 대표적으로 원래 남베트남군 특수부대 위장복이었던 '타이거 스트라이프'는 전쟁 중반이 되면 미군 특수부대들도 제식마냥 착용하고 다닌다.[* 전쟁초기에는 특수부대의 상징성이란 측면에서 위장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 위장복이면 아무거나 걸쳐 입고다닌다. 그래서 상하의가 다른걸 입은 경우도 꽤 되었고 같은 팀 안에서도 위장복이 여러개 였으나, 이후 피아식별과 통일성 측면에서 최소한 팀 단위로 같은 위장복을 입게 된다. 결국 가장 흔한게 타이거 스트라이프가 된다.] 한국군도 파월 맹호/백마 예하의 수색대 및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파견팀들 중 일부 대원들이 타이거 스트라이프 위장복을 입었었다. 1960~70년대 한국 육군 전투복과 비슷한 물건은 월남군 전 군이 한국군과 비슷한 녹색을 천을 사용했기 때문에 더더욱 구하기가 쉬웠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 한국군 병사들이 학살을 숨기기 위해 다른 위장복이나 다른 나라 군대로 위장했을 가능성은 없지 않겠느냐 반문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학살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보면 등장하는 한국군 수가 최소 중대단위 규모에 장갑차를 끌고 오거나 헬기가 언급되는 지경이다. 이정도면 대대나 연대급의 허가를 맡아서 최소 수백명의 병사가 출동 했어야 말이 된다. 만약 그중에 누군가가 다른나라 위장복으로 갈아입고 학살에 나섰다면 나머지 수백명의 군인들이 목격하고 학살사건의 증인이 되어 큰 소란이 났어야 하니 가능성이 없다. 더구나 한국인은 베트남인과 동일한 동양계 황인종이라 얼굴을 확인 가능한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면 외관상 구분이 힘들다.[* 권헌익 교수, “Anatomy of US and South Korean Massacres in the Vietnamese Year of the Monkey, 1968” [[http://www.japanfocus.org/-heonik-kwon/2451/article.html|#]] 40번째 문단을 보면 범죄 피해자들의 실제 범인의 구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범인을 특정한다는 예를 들고 있다.] 베트남 전쟁박물관 사진이 학살의 근거로 제시되기도 하나, 베트남의 전쟁박물관에는 왜곡된 사진들이 걸려 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 예를 들자면 베트콩 포로를 압송하는 사진을[* 이것은 명백히 종군기자가 찍으면서 설명한 사진에다가 어디서 찍혔는지, 무슨 부대 소속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다.] 몬타크나드족들을 수용소에 압송한다고 [[http://www.vietvet.co.kr/technote/board/2008free/upimg/1430560923.jpg|왜곡시키거나]] 베트콩 여자를 심문하는 사진을 "후옹 디엔 학살"이라는 거짓말을 짤막하게 적어 놓은 경우도 [[http://www.vietvet.co.kr/technote/board/2008free/upimg/1430561242.jpg|있으니]] 베트남측 자료는 상당히 신빙성이 떨어진다. 또한 어떤 베트남 자료에는 한국군 700여명(!)을 사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예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파월 한국군 전체 전사자가 5000명 이하인데 20%가 전투 하나에서 몰살당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망자나 부상자을 일일이 이름으로 적을 정도였기 때문에 대대-연대 규모의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한국 측이나 미국 측 자료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조작이라는 소리다. 네이버 캐스트 "그 시절 그 이야기"에서도 한국학살이 언급된 적이 있다. 동아일보 출신에 국간행물윤리위원장을 지닌 민병욱 기자에 따르면, 1966년 12월 6일 빈 호아사 꺼우 마을에서 131명을 살해한 것이 1983년 외국 언론의 보도로 밝혀졌다고 보도했으나, 정작 그 외국 언론 보도의 기사 원문이나 링크는 없다. 또한 몇몇 학살에서 학살 주장 지역과 주월 한국군 주둔지역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로 맹호부대가 벌였다는 고자이 양민 학살 사건 같은 경우 그 당시 한국군은 다른 지역에 주둔하고 남베트남군의 관할이었는데 한국군에 의한 학살은 발생되기 어렵다. 특히 한겨레가 했던 학살 주장에는 한국군이 '''월남전에 가져다 쓰지도 않은 독가스, 심지어 보유한 적조차 없는 [[B-52]] 폭격기'''[* B-52 뿐만 아니라 한국군은 [[폭격기]]라는 것 자체를 베트남전 당시는 물론이고, 창군기 시절부터 2021년 지금까지도 단 한번도 운용한 적이 없다.]를 몰고 죽여댔다는 주장들도 있어서 신빙성을 더욱 떨어트리고 있다. 학살을 숨기기 위해 전차로 시체를 짓뭉갰다는 이야기도 자주 나오는데, 현지 주민들이 군사적 지식이 부족해서 전차와 장갑차를 구분하지 못해 그런 증언이 나오는지 몰라도 주월 한국군은 장갑차(APC)만 보유했고, 전차(Tank)는 단 한 대도 없었다. 군사범죄인 학살은 소대급 이하 소규모 부대의 불법적 일탈 행위인데, 학살에 사단 직할 장갑차 중대에만 있는 장갑차가 동원되었다면 사단급 작전에서 학살이 있었다는 뜻이라 신빙성이 떨어진다. 장갑차부대와 보병부대가 둘 다 사건을 은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체를 파묻는 것도 아닌 짓뭉개는 것으로는 당연히 학살을 숨길 수 없다. 지금도 한국어 위키백과를 살펴보면 십수 개에 달하는 한국군의 베트남인 '학살'사건에 대해 적혀 있으며 총합 학살 카운트가 무려 수천 명 단위에 이른다. 이 문서들을 다 믿기 힘든 이유는 일단 영문 위키백과 등에 올라와 있는 한국군의 학살 관련 항목과 숫자의 근거가 베트남이나 미국 측 자료도 아니고 '''한국군이 학살을 했다고 주장하는 꾸준글을 쓰는 한국인들 출처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cm1996&logNo=221253006998&proxyReferer=https%3A%2F%2Fm.blog.naver.com%2FPostView.nhn%3FblogId%3Dkcm1996%26logNo%3D221254113870%26navType%3Dtl%26proxyReferer%3Dhttp%253A%252F%252Fm.blog.naver.com%252FPostList.nhn%253FblogId%253Dkcm1996%2526currentPage%253D3|그것도 원문 출처 상당수가 구수정과 한겨레 신문이고]] 아닌 것들도 대부분 베트남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한인 단체 사람들이 쓴 책이거나, 마을에 조성된 증오비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